첫 번째 학습지에 대한 기억은 35년쯤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문에 돌돌 말려 있던 '아이템플'... 기억은 가물거리지만 일 일 학습의 개념으로 한 장씩 풀 곤 했었던 거 같다. 딱히 기억이 안 나는 것으로 보아 나도 열심히 하지는 않았던 것 같고 브랜드 이름만 남은 학습지에 대한 첫 기억이다.
두 번째 학습지에 대한 기억은 성인이 되어 내가 학습지 교사를 했던 시절이다. 일주일간의 혹독한 신입 교육이 끝나고 수학, 국어, 영어 등을 집마다 다니며 10분여간의 수업으로 아이들을 만났었다. 그때는 많이 어렸기 때문에 각각 학생들의 학습에 대해 생각하기보다는 이 집은 엄마가 있는 집, 맞벌이로 아무도 없는 집 등 내가 들어갈 때나 나올 때 편한 집인가, 아닌가에 더 신경이 쓰였던 거 같다. 사실 이 시기의 기억도 별로 없는 건 열심히 하지 않았던 첫 번째 학습지의 기억과 비슷하지 않을까?
서론이 이렇게 긴 이유는 학습지에 대한 내 생각이 그저 모르는 이가 말하는 선무당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어서 일 수 있다. 말해 놓고 나니 선무당이라고 먼저 이야기하는 꼴이 아닐까 생각이 들지만 나는 수학 강사로 약 16년째 일하고 있니 너무 나무라지는 말기를...
최근 코로나로 인해 대면 수업이 줄어들고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온라인 학습이 성행 중이다. 학교에서부터 줌이며, 온라인 영상 숙제 등 모조리 컴퓨터나 스마트폰, 스마트패드를 이용하니 전자기기들과도 익숙해진 가정에서 몇십명을
만나고 오는 학습지 교사를 집에 들이기도 찝찝한 마음이 들 테고, 학습지를 대체할 온라인 학습을 선택해 이제는 학습지 시장이 거의 온라인 쪽으로 넘어가고 있다.
장점으로 비대면도 있겠지만 스마트패드를 이용해 클릭하며 즉각적인 반응을 줄 수 있어 아이가 재미있어하고 모든 과목을 배울 수 있으며 영상으로 교사가 옆에 없어도 배울 수 있기 때문에 언뜻 보면 학습지와는 비교할 수 없이 신선하고 많은 것을 즐겁게 배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런 온라인 회사는 대부분 한 달간의 무료 체험 기간을 주는데 이것을 아이와 같이 체험해 본 적이 있다. 서점에서 우연히 낚인 것으로 그들은 알겠지만 고민하여 내가 신청을 해 보았다.
한 달을 체험한 결과는 생각했던 장점들이 다 맞긴 하지만 그 장점이 그대로 단점이 되어버리는 아이러니가 된다는 것이다. 클릭하며 즉각 반응하는 패드는 어떠한 고민 없이 여러 번 눌러 답을 찾을 수 있고 모든 과목을 배울 수는 있으나 카테고리가 너무 많아서 우리 아이 수준은 어떻게 되는지, 또 어떤 카테고리로 진도를 나가야 하는지 알 길이 없다. 또한 주어진 학습 영상도 유튜브를 보듯 잘 보겠다고 생각하겠지만 진짜 유튜브 보듯이 할 뿐 정자세로 앉아 내용을 필기하고 이해하며 영상을 보는 것은 어지간히 준비된 학생이 아니면 어렵다고 할 수 있다.
아이 학습에 대한 내 생각은 항상 자기 자식을 모르는 부모로 끝나거나 초등학생의 자기주도학습이 성공할 거란 안일한 생각을 한 어른의 반성으로 마무리가 된다. 초등학생을 키우는 부모는 아이에게 거는 기대가 아직은 크고 (중학교 학생을 부모부터 서서히 자기 자식에 대한 객관화가 이루어지는 것은 말을 하지 않아도 이해가 되실 터) 내용이 어렵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내 자식이 잘 안될 거라는 생각을 하기는 어려운 점이 있다. 또 혼내고 잔소리하면 어느 정도 따라오는 척을 하는 초등생의 경우에 이 정도만 해도 좋아지라는 생각으로 시작할 수도 있겠지만 온라인 학습의 결과를 지면 시험으로 확인하지 않고서는 그 효용성을 알 길이 없다.
최근 전 동료인 온라인 학습 회사의 연구소 팀장을 만난 일이 있다. 온라인 학습이 성행하기 전부터 연구소에서 교재를 만들어 오신 분이신데 최근 온라인 회사로 이직하셨다. 온라인 학습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면서 예전에는 아이들이 클릭하는 것을 즐거워해서 콘텐츠에 많이 넣었는데 지금은 오히려 귀찮아해 쌍방향 콘텐츠를 줄이고 있다는 말씀과 함께 자신도 문제를 검수하다 보면 자연스레 생각을 안 하면서 문제를 클릭하고 영상도 보고 있더라…라는 말씀하셨다. 물론 직업으로 하는 것과는 다른 이야기일 수 있으나 그런 아이들을 우려하는 내 생각에 동조하며 꺼낸 이야기이니 크게 틀린 말은 아닐 것이라 생각이 든다. 40대 중반인 나와는 다른 시대를 사는 아이들이니 꼭 어른들과 같은 결과를 내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꼰대가 하는 말로 들을 수도 있겠다. 시대는 바뀌었지만 분명 인지해야 할 사실은 아직은 평가 체계가 크게 바뀐 것은 없다는 것이다. 어차피 결과를 내는 건 지면을 통한 시험이고 그 안에는 문장을 이해하는 능력, 서술 능력 등을 길러 주려면 온라인으로만 해결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온라인 학습이 절대 필요 없다고 이야기하려는 것이 아니다. 온라인 학습의 단점은 대부분 아이 스스로는 잘해 나가기 어려울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이며 지면학습으로의 연계를 통해 앎을 점검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부모들은 그래서 어떻게 하란 말인가? 라고 묻겠지만 처한 가정 상황에 따라 다르겠다는 말로 얼버무릴까 한다. (또 이야기할 수 있는 날이 오겠지요) '잠시 꺼 두셔도 좋습니다'라는 광고 카피가 생각이 난다. 아이가 온라인 학습을 하면서 잠시 끄고 생각하면서 학습하면 참 좋을 텐데, 좋은 메타인지를 가지고 있어서 자신이 어떤 콘텐츠를 봐야겠다고 알 수 있으면 참 좋을 텐데 라는 어처구니도 없는 생각을 한다. 온라인 학습의 단점을 이야기하고자 꺼낸 말들에서 왜 어른들도 못 하는 자기주도학습을 아이에게 요구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로 마무리가 되니 나는 자기반성을 취미로 가진 사람이 맞는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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